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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1977. 3. 1~현재: 김득중 원장은“예절의 나라에 예절이 없으니 한국에 한국이 없다”고 개탄하며, 전래예절을 연구하여 새 시대, 새 생활 여건에 접합시키는 일을 하기 위해 건국 이래 최초로 민간 예절연구기관인 한국전례연구원을 임의 설립하여 국가, 자치단체, 기업의 일체의 지원이 없이 순수 자비로 운영하다.

02. 1980. 3, 25: 정치사상서 '나라의 주부부·가정의 역사책 ‘家寶’를 편저·간행한 이래 22종의 예절책을 편저·간행하다.(외 편저 다수)

03. 1983. 3. 1~현재: “순연인성을 함양하여 예의한국을 재건하자”를 목표로, ‘예의생활사실천운동' 깃발을 만들어 서울 시청 앞 지하철 1번 출구에 세우고, 전단을 나누며 운동을 개시하여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배포전단 4,488,700장)

04. 1985. 3. 26~현재: KBS 2TV '명랑열차 인생을 걸고’ 이래 현재까지 6,168회, 46,615분간의 TV 라디오 방송을 하다.

05. 1985. 4. 2~현재: 월간 신동아에 ‘마음인가 행동인가’ 를 기고 게재한 이래 정기간행물에 2,346건, 52,024장의 원고를 기고 게재하다.

06. 1985. 4.19~현재: 법무연수원에 직무강의를 한 이래 현재까지 학교, 정부기관, 단체, 기업, 교육·연수원. 예절강의 11,117회, 23,635시간. 수강인원 897,390명에 이르다.

07. 1985. 9. 7~현재: 예의생활실천운동 참여자에게 자료 제공을 목적으로 잡지사상 최초의 예절잡지 ‘協贊謝報’를 간행 배포한 이래 ‘月刊 實踐禮節’로 개제하여 현재까지 단 1건의 유료광고의 게재도 없이 140호에 1,595,711권을 전국의 교육문화기관 및 예의생활실천운동 참여자에게 무가로 우송 배포하다.

08. 종래의 남좌여우설을 태양에너지설을 도입하여 남동여서설로 정립하여 발표하다.

09. 1986. 2. 1: 남자의 전통 배례법과 읍례법을 발굴하고 여자의 굴신례를 정립하여 발표하다.

10. 1986. 3. 14: 경북 예천고등학교 강당에서의 안동·예천지역 유림대상 강의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동방예의지국의 전거와 배경에 대하여 발표하다.(1993. 1. 29자 참조)

11. 1986. 4. 27: 정부의 요청으로 대학로 광장에서 최초로 전통혼인례를 시연하다.

12. 1986. 5. 16: 長子婦 貞恩堂 金海金씨에게 우리나라 최초의 戒子婦書를 지어 내리다.

13. 1986. 7. 1~현재: 월간 실천예절 15호에 예절문답을 시작하여 현재 632문·답에 이르다.

14. 1986. 8. 7: 유관순 열사 영정의 공수가 잘못된 것을 수정 건의하여 이루다. 성균관 朴重勳 관장이 현대판 예송에서의 승리라고 평가 하다.

15. 1986. 8.14: 여자의 전통 배례법을 발굴하여 발표하다.

16. 1986. 9. 1: “예절의 동서남북과 상하석의 기준의 발표 및 신랑과 신부의 위치를 산 사람의 위치인 남동여서로 바꿔야 한다”고 전단을 배포 홍보 캠페인을 벌리다.

17. 1987. 2. 26: 성균관 초대 전례연구위원장에 위촉되다.

18. 1987. 3. 19: 장손 相淳의 우리나라 최초의 作名禮를 거행하다.

19. 1987. 8. 7: KBS 1TV 금요토론 ‘개헌, 여성도 할말 있다’에 출연하여 “우리나라 현행헌법은 여자의 근로만 보호하고, 여자만의 복지와 권익만을 보호하고, 모성만을 보호하는 여존남비 헌법”이라고 주장하다.

20. 1987. 10. 31: 성균관 초대 교화연구위원장에 위촉되다.

21. 1988. 1. 28: 광주 금호타이어 강의에서 한국인정신은 ‘우리(仁)’라고 발표하다.

22. 1988. 5. 16: 삼성그룹 창원 주)삼성항공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현대 집체성년례를 거례하다. 이후1996년까지 매년 거례하여 확산되다.

23. 1988. 5. 26: 경기도 교육청 호국교육원에서 김득중 원장이 발굴 정립 발표한 공수법, 읍례. 굴신례, 배례법, 경례법, 좌석배치 등의 비디오 테이프를 제작하다.

24. 1988. 7. 25: 김득중 원장이 ‘가정의례 법령의 개정을 위한 공청회’에 지정토론자로 참여하여 ‘가정의례에관한 법률의 폐기’와 ‘결혼이란 말을 혼인으로 바꾸어 법률용어를 통일해야 한다’고 주장하다.

25. 1988. 11. 5: 문교부 서울시 교육위원회 교육연구원에서 중·고등학교 시청각 교재로 김득중 원장이 발굴 정립 발표한 공수법, 읍례, 굴신례, 배례법, 경례법, 좌석배치 등의 슬라이드 필림을 제작하다.

26. 1988. 11. 20: 김득중 원장의 편저 ‘우리의 전통예절’을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서 간행하여 1844년의 사례편람 이후 150년만에 정통예서의 맥을 이었다는 평가를 받다. 청소년 권장도서로 선정되다.

27. 1989. 3, 1: 한국전례연구원의 표장으로 ‘圓方角點太極圖 萬有始原形成象’을 완성하다. 1996. 4. 22에 社團法人 韓國典禮院에 공용을 양해하다.

韓國典禮硏究院 標章(마크) 說明

圓方角點太極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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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有始原形成象

1. 圓(◯): 天, 圓形을 나타낸다.
2. 方() : 地, 線?面形을 나타낸다.
3. 角(△) : 人, 角形(모서리)을 나타낸다.
원방각은 天地人 三才로서 모든 것을 의미하고, ◯  △은 森羅萬象, 모든 形態의 基本 꼴을 나타낸다. 그러나 ◯  △은 이루어진 형태이므로 그것을 이룬 근본이 있어야 할 것이다.
4. 點( · ) : 始原이다. 點은 有而無形이나 모든 것이 비롯되는 근본이다. 點이 이어지면 線(—)이 되고, 線이 펼쳐지면 面()이 되고, 面이 쌓이면 體()가 되고, 線이 휘면 圓(◯)이고, 線이 꺾이면 角(△)이 된다. 그러나 點이 있음으로서만 되는 것이 아니고 造化를 일으킬 때에만 이루는 것이다.
5. 太極(siljeok_tk.jpg) : 造化이다. 點이 造化하므로서 有가 發生한다.
● 總說 :
天地人을 포함한 森羅萬象은 點의 造化로 ◯  △의 형태로 나타난다. 天地는 完成된 것이나 人은 항상 未完이다. 그러므로 點이 포개진 ◯ 에는 同心에 위치하나 안의 △에는 한 편으로 치우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사림의 完成에는 禮와 敎化가 필요한 것이다.

28. 1991. 2. 7~2.14: KBS 1TV 예절캠페인에 김득중 원장의 ‘부부 세배법’을 연속 방송하다.

29. 1992. 5. 26: 김득중 원장의 편저 ‘우리의 생활예절’을 성균관 예절로 수용하여 성균관에서 간행하다. 청소년 권장도서로 추천되다.

(출간사의 끝 부분)
-전략- 성균관과 유도회 총본부에서는 일찍부터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이에게 바람직한 이 시대의 살아있는 예절을 가르치는 사회교육을 전국 2백여의 향교에서 실시해 왔다. 교재의 절실한 필요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형편이 여의치 않아 출간이 이렇듯 미루어져 왔다. 이 소책자는 우리의 전통윤리와 예절을 바탕에 두고 현대생활에 적합한 것을 추려 이 분야의 대가이신 김득중 전례위원이 집필해 주셨고, -중략- 깊은 사의를 표하는 바이다.
 1992년 4월 1일  성균관장, 유도회 총본부 위원장 김 경 수

30. 1992. 7. 16: 김득중 원장이 보건복지부 ‘묘지제도자문위원’에 위촉되다. 이후 3기를 연임하다.

31. 1992. 9. 10: 서울역에서 귀성객에게 “1961번째 한가위의 유래와 차례지내는 법” 전단을 배포하며 캠페인을 하다.(한가위 명절에 ‘몇 번째’를 쓰기 시작하다.)

32. 1993. 1. 18: 14대 김영삼대통령 취임식에 제하여 “대통령 부인을 ‘영부인’이 아니고 ‘대통령 부인 〇〇〇 여사’라고 해야 한다”고 건의해 채택되다.

33. 1993. 1. 29: 교육부장관이 문서번호 정신 81120-21호로 시달한 민원회신 문서로 “귀하가 문의한 ‘동방예의지국’의 출처에 대하여 : 공빈(孔斌)이 쓴 ‘동이열전(東夷列傳)’에 ‘동방예의지군자국(東方禮儀之君子國)’이라는 표현이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며, 더 자세한 내용은 한국전례연구원(원장 金得中)에 문의해 보시기 바랍니다.”고 1986. 3. 14에 김득중 원장이 발표한 전거와 배경을 확정하다.

34. 1993. 5. 24: 보건복지부 ‘가정의례심의위원’에 위촉되다. 이후 4기를 연임하다.

35. 1993. 8. 13~1996. 12. 16: 예절대학 과정을 개설하여 61기에 3,330명을 교육 배출하다.

36. 1993. 11. 6~현재: “예절의 전문화, 직업화, 자격증시대에 대비하자”며 예절지도자 교육을 하다. 현재 65 기에 1,401명이 배출되었고, 주말반으로 66기가 교육중이다.

37. 1994. 1. 1: 자정에 서울정도 600주년기념행사에 서울시에 의하여, 대한민국 정신지도자로 초빙되어 보신각 제야의 종을 타종하다.

38. 1994. 5. 6: 김득중 원장이 한국청소년연맹 주최 ‘전국 청소년 지도자 공개토론회’에 주제발표자로 선정되어 “가족은 연대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청소년이 가정행사에 참여해야 한다. 가정행사로 결석하는 학생들을 가정실습으로 처리하고, 직장인들은 자기와 배우자 및 부모의 생일이나 제삿날은 유급휴가를 주고 상여금의 일부를 균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다.

39. 1994. 6. 16: 보건복지부장관이 가정 65221-350호 문서로 ‘올바른 예의문화 홍보를 통한 건전가정의례실천’을 시달하면서 “한국전례연구원의 생활예절을 근거자료로 채택한다”고 결정고지 하다.

40. 1994. 7. 7: ‘가정의례에관한법·령’을 개정하면서 ‘결혼’을 ‘혼인’으로 개정하다.(1988. 7. 25의 건의가 시행되다.)

41. 1995. 3. 5: 국방정신교육원(지휘관 교육기관)의 교재 ‘정신전력 연구’에 김득중 원장이 집필한 ‘예절실천을 통한 군의 충성심 함양방안’(원고 160장)이 실리다.

42. 1995. 5. 3: 교육개발원이 초등학교용 ‘생활의 길잡이 (12권)’을 제작하는데 집필자로 초청된 김득중 원장이 “우리도 알지 못하는 예절을 어떻게 쓰느냐?”는 집필진 22명에게 예절자료를 제공하고 자문에 응하여 집필하게 하다.

43. 1996 4. 22. 김득중 원장이 교육한 예절지도자 230명을 회원으로 사단법인 한국전례원을 창립하고, 총재가 되어 한국전례연구원 표장 ‘圓方角點太極圖’를 표장으로 같이 쓰게 하다. 김득중 원장은 6.6.에 법인설립 등기를 필하고 총재직을 사퇴하다.

44. 1996. 10. 16: 한국전례연구원 출신 박사·석사 학위 소지자 중 희망자 27명으로 대학예절교육연구회를 설치하고 예절연구와 대학 예절교육 활성화에 주력하다.

45. 1997. 3. 1: 한국전례연구원 설립 20주년. 483명의 문하 학자들이 올린 송덕패에 “선생님을 韓國禮節의 宗師로 일러 뫼신다”고 하다.

46. 1997. 3. 2: 김득중 원장이 대진대학교의 객원교수가 되어 실천예절을 교양선택 교과목으로 개설하다. 연간 최대 수강실적: (신입학생 정원 1,900명) 실천 생활예절, 실천 의식예절, 통과의례 실습, 가정생활과 예절, 사회생활과 예절, 국제생활과 예절 등 6개 교과목48개 분반, 3,360명에 이르다.

47. 1997. 5. 19: 전북대학교 재학생 3,050명에 대한 집체 성년례를 김득중 원장이 큰손님이 되어 거례하다. 현재까지 최대인원의 성년례로 기록된다.

48. 1997. 11. 12: 김득중 원장이 대학교재로 집필한 ‘실천예절 개론’이 문화관광부 추천도서가 되다.
이미 김득중 원장의 저술 ‘우리의 전통예절’ 우리의 생활예절’, ‘생활예절 이렇게 한다’, ‘어린이 생활예절’ 등이 청소년 권장도서로 선정된 데에 뒤이은 결과다.

49. 1998. 3. 18: 가정의례심의위원회에서 김득중 원장이 “대한항공 여객기의 괌도 추락사건 희생자 시신수습과정을 거론, 시체수습을 위한 예절자격증의 필요성”을 강조”하여 채택되다.

50. 1998. 4, 25: 김득중 원장이 자택에 예절동호인을 위한 ‘和園사랑방’을 개설하고, ‘예절 지도교육 연구 120시간 과정(지도자과정부터 통산 11기부터)’을 시작하다.

51. 1998. 5. 29: 숙명여자대학교 재학생 2,055명에 대한 집체성년례를 김득중 원장이 큰손님으로 거례하다. 여성성년례로는 최대인원으로 기록된다.

52. 1998. 11. 8: 가정의례심의위원회 ‘건전가정의례의 정착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의 심의 시에 김득중 원장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예절전문인을 양성해야 한다”고 규정할 것을 주장해 참석전원의 동의로 실현하다. 11. 20에 보건복지부장관의 요청으로 동법률안의 조문화 작업을 완료하여 제출하다.
1999. 1. 7에 국회를 통과하여 1999. 8. 9에 시행되다.
1988. 7. 25가정의례에관한법률의 폐기를 주장하고 11년만에 실현된 것이고, 1993. 11. 6의 지도자과정 개강식에서 예절의 전문화 직업화를 언급하고 5년만의 전문인 규정 실현이다.

53. 1999. 2. 28: 김득중 원장은 전항 법률시행에 대비하는 예절전문인 교육을 위하여 한국예절교육학회를 발의  추진 창립하고 명예회강이 되다.

54. 2000. 2. 19: 한국전례연구원 지도자과정 동문회에서 사단법인 서울예문화연구원을 설립하고 김득중 원장을 고문으로 추대하다.

55. 2000. 3. 4: 성군관에서 화원사랑방 제16기에 예절강사요원 13명을 위탁 교육하다.

56. 2000. 9. 3: 김득중 원장 자택의 화원사랑방을 서울 광진구 구의3동 546-7 강변우성아파트 101동 105호로 이전 개설하고 서재를 九宜齋라 하다.

57. 2000. 11. 20: 1997년에 제정된 자격기본법이 개정되어 민간자격증으로 예절자격증을 줄 수 있게 되어 한국전례연구원 출신의 단체 개인이 자격증을 주기 시작하다. 그러나 한국전례연구원은 “자기가 가르치고 자기가 주는 자격증은 객관성이 없다”면서 자격증을 주지 않다.

58. 2001. 1. 26: 김득중 원장은 수강학자들의 청에 의해 ‘대인관계의 요점’인 九宜銘을 완성하다.

59. 2001. 5. 25: 객관성있는 예절자격증 제도를 시행하기 위하여 화원사랑방에서 한국예절교육학회를 모체로 하여 사단법인 한국예절교육협회를 설립하고 김득중 원장은 명예회장이 되다.

60. 2002. 4. 4: 경기도 북부청사(의정부) 준공기념 조찬회에서 김득중 원장은 우리나라 최초로 “붕괴된 가정을 복원하자”는 강제로 강연하면서 “100년이 안가서 우리나라 인구가 3백만도 안될 것”이라고 각종 통계자료를 근거로 경고하다. 정부당국과 언론에서는 12월부터 논의하기 시작하다.

61. 2002. 6. 12: 예절의 노래(한국전례연구원가)를 김득중 작사, 한세용 작곡으로 완성하다.

62. 2002. 6. 22: 한국전례연구원 출신학자 친목단체로 ‘한국전례연구권 출신학자 예친회’를 구성하다.

63. 2002. 9. 15: 김득중 원장이 편저하고, 학문사에서 간행한 ‘어린이 예절생활(어린이 예절교육)’ 3권이 서울시 규육감의 인정교과도서가 되다.

64. 2002. 7. 29: 김득중 원장 원작, 감수로 성균관유도회에서 예절비디오 초등학생용, 중학생용, 고등학생용, 일반용 4부작을 제작완료하다.

65. 2003. 5. 18: 한국전례연구원 안에 ‘유아예절교육연구회’를 설치하다.

66. 2003. 7. 8: 국가예산으로 예절지도자를 양성교육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유도회 교육원이 정부(문화관광부)의 예산지원을 받아 실천예절지도사 교육을 하는데 김득중 원장이 전체 과정 중 30%를 강의하다.

67. 2004. 2. 28: 한국전례연구원 홈페이지 www.yejeul.co.kr 한글: ‘한국전례연구원’을 구축 개설하다.

68. 2004. 6. 15: 노동부에서 “예절강사를 직종으로 분류했다”면서 예절강사의 교육양성 방법과 교과목에 대하여 자문해 오다. 鄭泰煥, 金啓淑을 추천해서 협력했다.

69. 2004. 9. 26: 정부(행정자치부)로부터 社團法人 汎國民禮儀生活實踐運動本部의 설립허가를 받다.
김득중 원장이 성균과유도회 교육원(원장 崔昌學)에 “내가 그간의 실적을 제공할테니 예의생활실천운동을 법인화해서 펼칠 것”을 권고한 것에 따라 2002. 8. 20에 발기인총회, 2002. 9. 4에 창립총회를 하고 마침내 설립허가를 받은 것이다. 김득중 원장은 창립이사로 참여할 것을 양해하다.

70. 2004. 10. 13: 김득중 원장은 경주 感恩寺를 방문하여 石塔 基臺石이 아닌 長臺石에 3太極이 아닌 4太極(김득중 원장은 重太極이라 표현하다.)이 그려졌음을 확인하고 발표하다. 종래 ‘太極圖의 시작이 감은사 석탑 기대석의 3태극도’라는 설에 대하여 김득중 원장이 신라 미추왕(재위262-284)릉 발굴의 금제감장보검(보물635호)에 3태극도 3개가 조각된 것을 발견하고 “감은사 중태극(682)보다 앞선 태극도”임을 주장․추정하다.

71. 2005. 10. 27: 사단법인 범국민예의생활실천운동본부의 900여회원이 참가하여 선언대회를 가졌는데 김득중 원장이 선언문을 가필 수정하고, ‘예의생활실천운동의 방향과 실제’에 대하여 강연하다.

72. 2006. 2. 17: 실천예절지도사 예절자격증이 정부(문화관광부장관)에 의해 국가공인이 되고, 관리자로 사단법인 범국민예의생활실천운동본부가 지정되었다.
김득중 원장은 1993. 11. 6에 예절자격증 제도를 주장한 이래 13년만의 성사이다. 예절의 전문화 직업화 자격증 시대를 모두 이루었다.

73. 2006. 9. 1: 김득중 원장이 1983. 3. 1에 시청앞에 세우고 예의생활실천운동을 시작한 유서 깊은 예의생활실천운동 깃발을 원래의 크기로 조각한 5m 높이의 예의생활실천운동 기비(旗碑)를 사)범국민예의생활실천운동본부崔昌學본부장이 기문(記文)을 짓고, 華山書室 沈炳倬학자가 글씨를 써서 경기도 이천시 설성면 장천리 산89의1에 세우고 그곳을 이례원(履禮園)이라 이름짓다. (기비에서 강력한 ‘하트 파’(사랑·행운·건강의 氣波)가 발산하여 많은 사람이 그 氣를 받고자 이례원을 방문한다. 利川市長이 공식집회에서도 그 사실을 홍보해 방문을 권한다.)

74. 2006. 11. 22: 사단법인 범국민예의생활실천운동본부에서 김득중 원장을 국민추천 정부포상 후보자로 추천하다.

75. 2007. 3. 1: 한국전례연구원 설립 30주년 및 예의생활실천운동 24주년 기념행사를 성균관대학교 600주년 기념회관 5층 국제홀에서 전국의 예학자 800여명이 모여 거행하다.
전국 예절인의 이름으로 김득중 원장을 ‘韓國禮節의 宗師’로 추숭(推崇)하다.
3월 1일을 ‘예절인의 날’로 할 것을 합의·선포하다.

76. 2007. 5. 18: 1997년에 폐업했던 도서출판 중화서원을 사업자등록번호 206-92-95866호로 재등록하고, 한국전례연구원은 비영리법인 및 국가기관 등에 부여하는 고유번호 206-80-08752호를 부여받다.

77. 2007. 6. 10: 김득중 원장은 자서전 ‘예절의 나라에 예절이 없으니 한국에 한국이 없다. 그래서 예절의 길, 나의 人生’을 간행하다.

78. 2007. 9. 1: ‘월간 실천예절’을 121호로 속간하다. 120호까지 매월 15,000권씩을 제작하여 전국의 교육문화기관에 무가로 우송배포하고 1996. 12에 중단했던 것을 매월 4,000부씩을 무가 우송배포하기로 속간한 것이다.

79. 2007. 11. 23: 김득중 원장이 ‘대한민국 청소년 대상’ 시상식에서 ‘청소년 보호 육성 선도 기여 헌신공로로 교육대상’을 받다.

80. 2007. 12. 4: 김득중 원장이 전통예절문화 연구지도 국가사회 발전유공 ‘국민추천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다.
김득중 원장은 “이번에 나에게 준 서훈은 김득중이라는 자연인에게 준 것이 아니고 예절에 대한 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번의 훈격은 추천한 국민이 아닌 심사한 정부당국자의 예절에 대한 가치부여와 인식의 정도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이어서 “어찌 되었든 우리나라에서 禮節과 관련하여 國民推薦으로 敍勳된 것은 1,717(肅宗43)년에 沙溪 金長生선생이 士林의 發議와 議政府의 査定에 의하여 文廟에 從祀되어 계레의 스승으로 陞賢되고, 1,883(高宗20)년에 그 아드님 愼獨齋 金集선생이 같은 절차에 의하여 文廟에 從祀되어 겨레의 스승으로 陞賢된 데에 이은 세 번째이며 開化期 이후, 大韓民國 建國 후에 처음으로 禮節로 因하여 國民推薦과 國務會議의 議決을 거쳐 전번의 敎育大賞에 이어 敍勳되었으니 앞으로는 이것이 先例가 되어 얼마든지 禮節 關聯者에게 敍勳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을 多幸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하다.

81. 2008. 3. 1: 이례원에 200여명의 예절인이 모여 제1회 예절인의 날 기념식을 하고, 이어서 ‘화원 김득중 선생 기념사업회’를 발족하다.

82. 2008. 12. 30. 민간자격 예절자격증 전문인 1-3급과 예절소양인증 4-9급이 우리나라 최초로 국가에 등록(제2008-0427호)이 되고 한국전례연구원이 관리기관이 되다.

83.  예절자격증을 다음과 같이 시행하다.

        ① 2009년2월23일 : 서울 강북구립 유치원 어린이 21명에게 제1회 예절소양인증 검정시험을 실시하여 예절소양인증 9급 자격증을 주다. 

        ② 2009년 8월24일 : 제1회 예절전문인 검정시험을 실시하여 5명에게 예절전문인 2급, 27명에게 예절전문인 3급 자격증을 주다.

        ③ 2009년10월1일: 경기도 파주시 금촌초등학교 부설유치원 어린이 48명에게 제2회 예절소양인증 검정시험을 실시하여 예절소양인증 9급 자격증을 주다. 

84.  2011년 3월 21일 : 재단법인 한국실천예절문화원 설립허가를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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