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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절의 길, 나의 人生

저   자 : 김득중

출판사 : 중화서원

판매가 : 20,000원

① 한국전례연구원 김득중 원장의 일생이 바로 현대한국예절의 과정이다.
② 1모작 30년 : 성장, 교육, 공직생활. 청운의 뜻을 품었었다.
③ 2모작 17년 : 삶의 체험현장, 처자를 위한 생잔의 고난과 역경을 딛고.
④ 3모작 30년 : 예절의 나라에 예절이 없으니 한국에 한국이 없다. 나의 모든 것을 예의한국의 재건에 바쳤다. 韓國禮節의 宗師로 추숭되기까지. 이것은 자서전이 아니라 현대예절의 객관적 검증이다.
⑤ 그 예절이 왜 필요하고, 왜 그렇게 되어야 했나? 어떻게 이루었나? 그 모든 것이 여기에 펼쳐졌다. 한국예절의 생생한 현장기록이다. 500쪽

 

 


自序 '예의생활실천운동'의 지속을 위하여

   자서전은 특별한 사람이나 쓰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제넘게 붓을 들었습니다. 그 까닭은 다음과 같은 주변의 권고를 옳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당신이 자서전을 쓴다면 "禮儀韓國 再建"과 "禮儀生活實踐運動"이 전부일 것일세. 그 일에 보탬이 된다면 자서전을 쓰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그 권고에 "옳거니…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겠구나!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는가? 마침 내 인생의 한 고비인 희수(喜壽)의 나이도 되었으니 "禮儀生活實踐運動" 연장선상에서 시도해 볼 만하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소시적부터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을 기록하여 잊지 않고 참고하려는 것이었지, 자랑거리를 기록하여 자신을 돋보이게 하거나 남에게 보이기 위함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저는 몇 년 전 심상 수술을 하기 직전에 큰 자식에게 유언(遺言)을 한 일이 있습니다. - "혹여 이번 수술이 잘못 되더라도 너의 생각에 아비의 삶이 육신의 존재 이외에 다른 것이 없다면 굳이 달리 찾으려 하지 말고 잊도록 하여라." - 절박한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하였던 것입니다. 하물며 지금이라고 특별히 다를 것이 있겠습니까? 저는 항상 "일기를 쓰는 사람은 실수가 적고, 금전출납부를 쓰는 사람은 낭비가 적다."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을 쓰기 위해 지난 기록들을 참고하여 약력(略歷, 年譜)을 간추려 보았더니 A4용지로 100여쪽에 가까웠습니다. 그것들을 되살리고 일기와 비망록을 종합하여 풀어서 여기에 옮긴 것입니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여도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잘못되어 가고 있습니다. "가정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라고 하면서도 상당수가 집(家庭)을 부수고 없애기 위해 안달입니다. 아니 법률상으로는 이미 없어졌습니다. 존재하지도 않은 남존여비(男尊女卑)를 앞세워 남녀평등을 외치더니, 남자를 남자라 하고 여자를 여자라 하는 것도 남녀차별이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여존남비(女尊男卑)의 헌법을 갖기에 이르렀습니다.

   핏줄(血族, 種統)과 살붙이(戚族)의 분별이 없어져 우리나라 민법에서 친족(親族)만 있고 친척(親戚)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또한 "無子息 上八字"라는 속담이 전해지더니, 자식을 낳지 않는 것이 자랑이 되고 독신 남녀가 증가하며 머지않아 온 나라가 공동화(空洞化)될 처지에 놓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인간윤리의 붕괴와 사회도덕의 퇴폐를 돈으로 미봉(彌縫)하려는 그런 세태가 아닌지요? 그런 사회적 환경에서 친족간의 살상과 재산 범죄가 극성을 떨고 있습니다.

   청백리(淸白吏)의 진가는 국민의 부담을 덜어주는 데에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공직자들은 국민의 세금을 늘이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잘못된 세상을 모른 척, 못 본 척 그대로 두고 갈 수는 없습니다. 무엇인가 달라져야 하지 않겠는지요? 그래서 만시지탄이지만 "예의생활실천운동" 깃발을 치켜들게 된 것입니다. 중년에 시작하여 30여 성상! 30년을 오로지 "예의생활실천운동"에 혼신의 노력을 경주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캄캄합니다. 그래서 이 글을 썼습니다. "예의생활실천운동"이 지속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일념 때문입니다.

   본 지면을 통해 고마우신 어른과 주변에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몇 말씀드리겠습니다.

◈ 저를 이 땅에 존재하게 하신 조상님의 은혜와 양육하시며 많은 교훈을 주신 아버님과 어머님의 망극하신 은혜에 깊이 감송(感頌)하옵니다.

◈ 저에게 특별히 많은 영향을 끼치신 할머님과 집안 어르신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많은 가르침으로 저를 일깨워 주신 선성(先聖), 선현(先賢), 선학(先學) 여러 선생님께 옷깃을 여미고 존경과 영광을 드립니다.

◈ 56년을 함께 살아오면서 오로지 나와 가정만을 위하여 몰아(沒我) 헌신한 아내(貞仁堂 宋畢鎬)에게 진실한 믿음과 사랑을 드립니다.

       부인! 참으로 고마워요.
       나는 내생(來生)에도 부인과 다시 하나가 되고 싶어요.


◈ 항상 부족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자손(子孫)들에게 위안을 전한다.

       얘들아!
       그래도 너희들이 있었기에 미덥고 든든하고 안심하고
       행복했단다. 이제 앞날은 너희들의 몫이다. 모든 일에
       자기의 소임을 다하고 성공과 행복을 이루기 바란다.

◈ 그간 나를 보살펴 준 많은 친우들과 예도(禮道) 한 길을 동행한 동학사우(同學師友)들에게 심심한 사의를 표하고 양양한 전도에 큰 발전과 성취를 이루리라 믿으며 축원해 마지않습니다.

끝으로 본서를 펴내는데 편집, 인행에 협력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단기 4340년(서기2007년) 初夏

和園 사랑방 九宜齋에서 金得中 쓰다

 

 


목  차

사진으로 본 77년/1~32
自序/
제1부 1모작 초년 인생 : 출생에서 공직생활까지/39
1-1 내가 생장한 시대적 환경/41
1-2 내가 생장한 지역적 환경/46
1-3 나의 가족과 家系/67
1-4 성장과 교육 및 사회활동/117
1-5 혼인/136
1-6 공직생활/148
1-7 군대생활/190
 


제2부 2모작 중년 인생 : 삶의 체험 현장에서/197

제3부 3모작 예절 인생 : 예절의 황무지에 예절의 꽃을 피우기 위하여/225
3-1 예절 관련 활동/227
3-2 발굴․계발․정립한 예절/276
3-3 주요 번역 및 저술 활동/349
3-4 예의생활실천운동 旗碑 건립/371


제4부 4모작 결실 인생 :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375


부록 1 : 和園 禮節 30周年 記念式 지상중계/377
부록 2 : 77년 나의 발자취(年譜)/419
부록 3 : 예절전문가 연구과정(和園사랑방) 커리큘럼/491
跋文/496